화를 품는 세 가지 마음 — 바위, 모래, 그리고 바다
살다 보면 누구나 화가 난다.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받기도 하고, 이해받지 못해 억울할 때도 있다.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, 사람의 말은 때때로 날카로운 칼처럼 마음을 베어버린다. 그럴 때마다 우리는 화를 품는다. 그런데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오고,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그 일을 잊지 못한다. 그 차이는 감정을 어디에 새기느냐에서 시작된다.
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.
“화를 바위에 새기면,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.
화를 모래에 새기면, 바람이 불면 사라진다.
화를 바다에 새기면, 바다가 모든 것을 품어낸다.”
짧지만 이 말씀 속에는 인간의 감정과 마음의 성숙, 그리고 자유의 단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.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았을 때, 우리는 바위에 새길 수도 있고, 모래에 새길 수도 있으며, 바다에 새길 수도 있다. 그 선택은 언제나 우리에게 달려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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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화를 품는 세 가지 마음 |
1. 바위에 새기는 마음 — 상처를 붙잡는 사람
바위에 글씨를 새기면, 그 흔적은 비바람에도 지워지지 않는다. 마음도 그렇다. 누군가의 말 한마디, 배신 한 번이 바위처럼 단단히 남는다. 시간이 흘러도 그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.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, 더 깊게 파인다. 이런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그때의 분노를 되살린다.
“그때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?” “그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?” “나는 절대 용서 못 해.” 이런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.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. 오히려 내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, 현재의 관계와 행복까지 잠식한다.
하지만 그 바위에 새긴 글씨는 결국 자신을 갇히게 한다. 단단한 마음은 때로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지만, 너무 단단하면 세상과 단절되는 벽이 되기도 한다. 미움을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,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. 과거를 붙잡는 마음은, 나를 현재로부터 분리시키는 사슬이다.
2. 모래에 새기는 마음 — 놓아줄 줄 아는 사람
모래 위에 새긴 글씨는 바람이 불면 사라진다. 이 마음은 화를 느끼지만, 그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. “그땐 나도 기분이 나빴지.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.”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.
모래에 새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지도, 과장하지도 않는다. 화를 인정하고,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. 그러나 머물지는 않는다. 그 감정이 지나가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.
이런 사람은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. “저 사람도 그날은 마음이 불편했겠지.” “그 말은 나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, 그 사람의 불안이었을 거야.” 이처럼 한 번만 더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, 감정은 부드럽게 흘러간다. 그 여유가 바로 지혜다.
모래에 새기는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고 현실적이다. 그들은 완벽한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. 단지 ‘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’는 태도를 선택한다. 이 작은 선택이 바로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첫걸음이다.
3. 바다에 새기는 마음 — 모든 것을 품는 사람
바다는 넓고 깊다. 돌멩이를 던져도, 폭풍이 쳐도, 바다는 결국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. 바다에 화를 새긴다는 건, 그 감정을 잊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까지도 내 안에서 품고 녹이는 것이다.
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화를 다스리는 방식이 다르다. 그들은 상대의 말보다 그 뒤에 있는 ‘마음’을 본다. “저 사람이 왜 그렇게 말했을까?” “그 속엔 어떤 두려움이나 외로움이 있었을까?”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, 분노는 이해로 바뀌고, 미움은 연민으로 녹아든다.
바다의 마음은 자비의 마음이다.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감싸준다는 게 아니라, 그 잘못조차 내 안에서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것이다.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세상의 거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.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화, 그것이 바로 바다에 새긴 마음의 힘이다.
4.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길 위에 있다
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. 그 화를 바위에 새길지, 모래에 새길지, 바다에 새길지. 누군가의 말 한마디, 행동 하나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,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.
바위에 새기는 건 가장 쉽다. 그 자리에서 화내고, 상처를 되새기면 된다.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무게가 마음을 짓누른다. 모래에 새기는 건 조금 어렵다.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흘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. 바다에 새기는 건 가장 어렵지만, 그것이 진정한 자유로 가는 길이다.
화를 품는다는 건 인간답다는 증거다. 그러나 그 화에 머무르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 때,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한다. 그때 비로소 미움은 이해가 되고, 분노는 깨달음이 된다.
5. 마음을 바다처럼 만드는 연습
바다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. 하지만 작은 실천으로 조금씩 길러낼 수 있다.
- 1) 화가 날 때 바로 반응하지 않기
감정이 올라올 때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. “지금 내 안에 파도가 일고 있구나.” 하고 알아차리기만 해도 감정은 힘을 잃는다. - 2) 상대의 입장 상상하기
“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.” “그 말 뒤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을까?” 이렇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는 여유가 화를 누그러뜨린다. - 3) 글로 감정을 흘려보내기
말로 하면 싸움이 되지만, 글로 쓰면 이해가 된다. 일기, 메모, 편지 어떤 형식이든 좋다. 쓰는 순간 감정은 흐르기 시작한다. - 4) 완벽한 용서를 기대하지 않기
“나는 미움에 머물지 않겠다.” 이 다짐 하나면 충분하다. 완전한 용서는 시간이 하는 일이다.
이런 연습이 쌓이면, 마음의 크기가 조금씩 커진다. 예전엔 며칠씩 끌던 감정이 하루 만에 가라앉고, 하루 가던 화가 몇 시간 만에 흘러간다. 그 변화는 미세하지만, 그만큼 인생이 가벼워진다.
6. 마무리 – 바위에서 바다로 가는 길
부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다. 화를 내지 않는 성인이 되라는 것도 아니다. 단지, 화를 어떻게 품을지에 대한 지혜를 알려준다. 바위에 새기면 고통이 되고, 모래에 새기면 배움이 되며, 바다에 새기면 사랑이 된다.
우리의 마음은 매 순간 바뀐다. 어제는 바위 같았던 내가, 오늘은 모래가 될 수도 있고, 내일은 바다처럼 넓어질 수도 있다. 중요한 건 방향이다. 단단한 분노에서 부드러운 연민으로, 닫힌 마음에서 열린 이해로 나아가는 것. 그 길 위에 있을 때, 우리는 이미 자유로워지고 있다.
오늘 마음에 남은 화가 있다면, 그것을 바위에서 꺼내 모래 위에 써보자. 그리고 그 모래를 부드러운 바람에 맡겨보자. 언젠가 우리는 바다의 마음으로 서 있을 것이다. 그때 비로소 과거가 아닌 지금, 미움이 아닌 평화를 살게 될 것이다.
당신은 지금, 어느 마음에 머물러 있나요? 바위일까, 모래일까, 아니면 바다일까?
